고시원 생활백서
- 눈딱 떠븐게 고시원이여
- 고시원은 신축이 짱입니다.
- 고시원으로 나의 비위 밑바닥 측정하기
이번 스테이지는 고시원이다.
10월 한달을 원룸에서 지냈던 저는
11월에는 고시원에 들어와있습니다.
돈 떨어져서 그리로 갔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고,
개를 데리고 지낼 수 있는 방을
가격 하나 보고 직장과 너무 먼 곳에 원룸을 잡았던 탓에
교통 편 문제로 너무 괴로웠던지라,
이번에는 직장과의 거리를 기준으로
지낼 곳을 골라본 끝에 고시원에 다다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시원에 대한 감상
이번 방 역시 직접 사진으로 보여드리기엔...
시각 보호를 위한 차원에서 그림이 낫겠다 싶습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첫 인상은
'오 쌰방, 사진에서 본 것보다 더 좁아터졌잖아.' 와
방 면적의 정확히 1/4을 잡아ㅊ먹고 있는
2면 유리벽 샤워부스 겸 화장실을 보자니
영화 '더 셀'이 생각났던 것입니다.
있을 지 없을 지 모를 외부 침입자보다
이 고시원 설계자가 더 위험해보이는 건 기분 탓일거야..?
물론 고급형, 성별 특화 고시원 시설도 많고 많지만
말했잖아요. 거리를 기준으로 골랐다고,
그리고 더럽게 가챠 운이 없는 똥손인 저는 기어이
잘못된 뽑기를 하고야 말았던 것입니...
아니지, 손이 아니라 머리가 문제일거야...
아오, 집 뽑기 운도 드럽게 없네-하고
마냥 좌절하고 있기도 애매한 이유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빌어먹을 천성과 더불어
내 바닥은 어디까지인가를 측정해볼 기회로 삼자는 생각이
또 스멀스멀 올라왔기 때문입니다.
숙박 시설로
여행 중에 칵테일 바와 비즈니스 클럽, 스카이 라운지를 운영하는 특급 호텔부터
창문 없이 사방에 거울만 붙어 있는 모텔을 개조한 영세 호텔에,
달방이 가능한 여인숙에서까지 지내봤으며
다양한 형태의
주택 환경으로는
벽돌 건물의 반지하부터
2층과 옥상까지 있고 녹색 철대문과
좁은 시멘트 정원,
좁고 가파른 계단이 달린
다세대 주택 하숙 생활부터,
/
도로 포장을 이제 막 시작하는,
푸세식 화장실이 집과는
공용 흙마당을 사이에 두고 양 끝 멀리 있고,
욕실과 주방 공간이 한 곳에 있는 덕선이네 집보다도 더 하드코어한 단칸 방 시골 집과
/
10만 마리 바퀴벌레가 동거를 하는 반지하 30년 넘은 구축 빌라에,
/
천장에서 물이 세고, 석유 난로를 방마다 떼며, 수도에선 시뻘건 녹물이 나오는 귀신 소굴 아파트부터
/
강남의 50평대 고급 아파트까지
/
단 30년 동안에 최소 1년부터 10년까지 두루 경험해본 나름 버라이어티한 인생 소유자로서..
내 자금의 상태에 따라 생리적으로 버틸 수 없다고 느끼는 그 주거 환경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그 바닥에 한번 터치다운 해보고 싶어져버린 것이지요.
그리고 내린 결론은
필수가 아닌 조건이라면
적어도 발레 스트레칭을 할 수 있는 바닥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면 좋겠다.
반드시 포기 못할 조건이라면
침대가 필수이며
침대 시트를 관리하기 위한 세탁기와 건조기가 필요하고, (혹시 모를 빈대와 진드기는 완벽한 재난이니까요)
하수구 등의 역겨운 냄새가 나지 않는 환경이어야 하고...
의식주 중에서 먹는 것, 입는 것은 양보하더라도
자고 한 몸 뉘일 공간의 상태가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이딴 것까지 직접 체험을 해봐야만 깨닫는 나도 참...
지능에 문제가 있다고도...
고시원도 고시원 나름이라고.
신축으로 가십시다.
피치못하게 고시원에 가야한다면 무조건 신축으로 가세요.
더 멀어도 그냥 신축으로 갈걸. 야팔...
그래도 지옥에 비견되는 쪽방촌보다도
이 고시원이
압도적으로 나은 환경임을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건물이 오래됐고 건물 주변 환경이 개차반이어도
각 방에 도어락이 있고 시설을 관리하는 원장이 있으며
해충도 없고, 규칙 위반자를 정말로 색출해내는 CCTV 운용에, 외부인 출입을 통제하면서,
쓰레기 배출 시설을 내부에서 운영하는 등,
나름 인간다운 쾌적한 환경을 구축해두었다.
는 점입니다.
물론 좁기는 엄청 좁다고 해도
무려 각 개인 방에 뜨신 물이 뻥뻥나오는 개인 욕실 겸 화장실에
초고속 인터넷 와이파이,
햇빛이 진짜로 들어오는 방문만한 유리창과
침대와 책상, 선반과 옷장까지 있으니까요.
하수구 냄새 정도야
개인의 비위 문제이기도 하거니와,
유리문만 닫아버리면 차단도 가능하고,
쪽방에 비하면 차라리 인간적인 수준이지요.
난 서울 서바이벌 중이야
혼자 살다보면 가장 중요해지는 것이 청소와 먹는 것입니다.
청소는 당연히.. 방 쓸고 닦기 수준이 아니라
화장실에서 나는 역겨운 하수구 시궁창 냄새 없애기!!!
이고요.
냄새 때문에 정말 이건 사람이 지내는 방이 아니라
맨홀 뚜껑 아래 어딘가에 있는 느낌 내지는 독방 감옥에
돈내고 들어와 있는 더러운 기분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스테이지가 바뀔 때마다 늘 떠오르는 것은
진지 구축과 식량을 비축해야하는 게임 '돈 스타브'인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 인간인 저를 돈 스타브스타일로 그리면 대충 이런 느낌....
자화상 그리기를 참 좋아하는 걸로 보아
스스로를 특별하다 착각하는 중이병 시절부터 심각했던
자아도취하는 증상이 완치되지 않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은 뱀발입니다... ;ㅂ;
그래도 셀카 찍기보다는 덜 대인공격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때때로 자장가처럼 들려오는 유흥가의 소음과 더불어
공사장 소리가 들려옵니다.
옥상이 개방되어 있어서 커피 한잔을 들고 올라가봤는데,
마치 세상의 끝같다고 느껴 엔드 라인이라고 불렀던 산간 지방의 첫 자취방과는 다르게
도시 한복판에 홀로 생존하는 졸라 고독한 느낌이 든달까요.
한달 살기는 이번에도 새로운 궤도에서 롤러코스터를 타게 되었습니다.
(살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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