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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첫 솜깅이 : 무속성 인형 1호기는 이 녀석입니다.
그의 이름 영수.
40체가 넘는 구체관절 인형에도 영문 한글 복합으로다가 줄줄이 읊기도 힘든 이름들을 붙였는데
왜 이런 한국적이고 단순한 이름인가, 하면 작명에 꽤나 신경을 쓰는 덕후임에도
이 녀석은 첫인 상이 그냥 영수였습니다.
도착한 택배 박스를 열고, 비닐 봉투를 열고 나서 딱 마주쳤을 때 좌뇌와 우뇌가 동시에 외쳤지요.
왠지 모르겠는데 자꾸, 본능적으로, 운명의 데스티니인 그 이름.
영수.
수제로 만든 솜깅이 옷을 입혀서 해맑은 인증샷을 찍어봅니다.
신발은 싸제(?)입니다.
밑창이 있는 신발을 사서 신겼을 때의 이점은, 스탠딩이 가능하다!
머리가 비정상적으로 큰 2등신의 인형이 서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신발에 들인 돈 덕분이다. 그런 것입니다.
역시 편리함은 자본에서 나오는 것이구나, 하는 진리를 또 다시 떠올려봅니다.
세트로 첫 옷을 장만해주었지만 역시 만들어 입히는 재미에 빠지면 답이 없지,
티셔츠만 만들어 입히기 시작합니다.
일일이 사진을 찍어두진 않았지만 대략 6벌 정도 됩니다.
그것도, 하루에 만들어낸 물량이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OOTD를 다채롭게 꾸미던 DIY 생활에 얼마 지나지 않아 운명적으로 또다시 만난 또다른 싸제(?) 의상 바로..
보송한 뱃털에 정말 만족해서 아예 디폴트 복장으로 고정되어버린 마성의 도날드입니다.
무려 신발과 상하의까지 무려 올인원이라고요?!
대신에 스탠딩은 포기합니다.
그래도 보들보들한 발바닥도 마음에 듭니다. 헤헤헤
솜깅이로 불리우는 무속성 인형을 들인 이유는,
너무 크고 비싸고 행여나 흠집이라도 생길까, 변색되면 어쩌나 노심초사 전전긍긍하느라,
포징 취하고, 세트를 꾸미고 조명을 설치하는 것보다 올 누드 몸 값만 반 백만원은 우습게 넘겨 재끼는
이 우레탄 인형이 혹시 자빠질까봐 정말 초긴장상태가 되어 진 빠지게 만드는 그 구체관절인형 놀이에 지쳤기 때문이었습니다.
(구체관절 인형의 경우는 [테일러링] 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평면인 원단을 3D의 형체에 입힐 수 있도록 만드는 패턴과 봉제 등의 양장 의복 제작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신발은 물론 속옷, 양말, 겉옷까지 사람 옷의 가격에 맞먹는 지출을 요합니다.
거기에 눈의 색과 모양을 바꾸는 안구와 머리 스타일링을 좌우하는 가발, 그 밖에 필수부자재들도 존재하죠..)
솜인형이면 (물론 절대 하면 안되는 짓입니다만) 시그니엘 옥상에서 집어던져도
1층 아스팔트 지면에서 저 망충한 얼굴을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멀쩡할 내구성을 지닌 소재에 다가
옷하나도 평면 모양으로 대충 자르고 바느질만해도 입히고 사진 찍는데 전혀 지장이 없고
크기가 작아서 여기저기 들고 다니기도 편리하다는 점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책상에 툭 놓고 작업이든 공부든 뭐라도 하다가 슥- 쳐다봤을 때
저 아무 생각 없는 듯한 해맑은 얼굴을 보면 뭔가 심난해져서 집중력이 더 올라가거든요. (음?)
그렇게 한 달도 되지 않아, 불치병에 걸린 저는 또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는 암흑의 기운에 잠식되어...
1호가 있다는 것은,
2호와 3호도 있다는 뜻이겠지요?
한 달에 한 마리씩 지르기에 이릅니다.
그럼 그렇지, 뭐든지 간에 한 개로 끝나는 법이 없어.
빨간색을 좋하지만 한동안 파스텔톤 다꾸에 홀릭한 시절에는
맑은 톤의 녀석을 사진에서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운동부 남고생의 컨셉으로, 함께 구매 가능한 운동복 옵션을 추가하고
도착 후에는 더플백을 만들어서 걸어줍니다.
그렇게 탄생한 솜깅이 2호기는 준수 입니다.
누구보다 찌질하고 있는듯 없는듯
교실 뒤편에서 만화나 그리던 공부 안하는 비루한 그림자 학생의 포지션으로
긴긴 학창시절을 보낸 저에게는
운동부, 체육계열 학생들에 대한 약간의 로망이랄까, 동경이 있었더란 말입니다.
교복을 단정하게 입기도 하지만(품행단정이 중요!) 운동복이 디폴트인 체육계 남고생.
매우 덕심 충만하게 즐거운 설정입니다.
청량한 색깔 조합이 무엇보다도 마음에 듭니다.
그리고 신비로움 가득한 3호기 은수.
이 녀석은 판타지스럽게도 핑크색인 염소의 뿔과 털이 복실복실한 동물의 역관절을 가진 하반신에
긴 꼬리 끝에는 핑크색 삼각형 꼬리촉이 달린 악마인지 뭔지 모를 인간이 아닌 생물체였던 것 같습니다.
내 손에 들어온 이상, 바느질 성형은 피할 수 없으!
여드름 종기처럼 정수리에 있던 뿔 두개를 제거해버리고,
귀가 총 4개인 괴랄한 디자인이지만.. 귀걸이 보관대의 역할에 충실하니 됐지 뭐, 하는 생각으로
귀는 뇌두기로 합니다.
무엇보다 유니크한 점은 위의 두녀석과는 달리 모헤어 머리가 있어서 털빠짐이 있는 리얼 '머리'입니다.
주기적으로 빗질을 해주지 않으면 먼지가 앉는 진짜, 손 많이 가는 녀석.
그러다 자수로만 된 밋밋한 로즈 핑크의 눈이 거슬리기 시작하여 레진으로 보석눈을 만들어버려서
세상에 하나뿐인 인형이 되었다는 후기가 있습니다.
세마리를 한 장에 그림으로 모아봅니다.
다행히 이 세녀석 이후로 추가로 지름은 스스로 자제하고 있는 중인데,
과연 이 맥시멀리스트 지름의 흑염룡을 언제까지 봉인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못생김에 빠지면 답이 없고
아름다움에 빠지면 더더욱 답이 없다.
- 존 버 John Bu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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